작성일 : 25-08-14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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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군오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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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거의 드레스를 선물하겠소.” 1477년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과 브루고뉴의 마리의 만남. 안톤 페퍼의 그림. 패밀리 비즈니스 전방에 선 야코프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힘에 부쳤다. 울리히에겐 믿을만한 조력자가 필요했다. 재산을 빼돌리지 않고, 책임감으로 일을 맡아줄 만한 인물. 역시 믿을 건 가족뿐이었다. 어린 동생 막내 야코프가 눈에 띄었다. 묵묵하지만, 야무진 성격. 사업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천성이었다. 울리히는 처음 베네치아 사업을 야코프에게 맡겼다. 그의 나이 고작 14살이었다. 베네치아의 ‘테데스키’(이탈리아에서 일하는 독일 상인들을 일컫는 말)로서 야코프는 제 몫을 했다. 물산의 흐름을 꿰뚫고 있었고, 셈에 밝았다. 당대 최고의 무역 도시에서 상업 프로세스를 체화한 덕분이었다. 르네상스 예술의 아름다움도 몸에 새겼다. 베네치아에서의 푸거 비즈니스는 도시의 태양만큼이나 반짝였다. 은행업도, 광산업도, 무역업도 언제나 ‘맑음’. 푸거 가문의 막내 야코프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회계사와 함께 사업을 논의 중인 야코프 푸거.(오른쪽) 야코프는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광산업자들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이들이 좀처럼 상환하지 않아서였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야코프. 몽니를 부리는 채무자들. 야코프는 다른 방안을 냈다. 돈을 갚는 대신에 지분(쿠세·Kuxe)을 요구한 것이었다. 당장에 돈을 안줘도 된다는 악마의 유혹에 많은 광산업자가 솔깃했다. 더 많은 업자가 야코프를 찾았고, 야코프는 더 많은 광산을 손에 넣었다. 야코프를 찾아온 광산업자 중에는 슈바츠의 지기스문트 공작도 있었다. 슈바츠는 유럽 최대 은 광산. 푸거가 유럽 전체의 은 생산량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다. 생산된 은과 구리를 자신의 지사들과 연결했고, 수익성은 커졌다. 야코프는 이제 더 이상 가문의 막내가 아니었다. 로마, 아우크스부르크, 베네치아, 슈바츠. 가장 중요한 요지들이 야코프의 손에서 운용되었으니까. “이거 다 푸거 껍니다.” 푸거 가문의 손에 떨어진 슈바츠 광산의 용해로. 결혼도 비즈니스로 삼았던 냉혈한 돈과 권력이 인생 최대의 가치였다. 결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498년 불혹이 된 그는 아우크스부르크 귀족의 18살 딸 시빌레 아르츠트와 혼인 서약을 맺었다.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귀족이었던 아내 집안의 도움으로 아우크스부르크 시의회에 이름을 올릴 수 있어서였다. 어린 아내가 다른 애인과 노닥거려도, 푸거가 개의치 않았던 이유였다. 정치적인 이득이 됐다는 것 하나만으로, 결혼은 성공적인 ‘비즈니스’였으니까. “사랑하오, 당신의 돈을, 당신의 권력을.” 야코프 푸거와 시빌레의 결혼. “Bella gerant alii, tu felix austria, nube!” (모두가 전쟁을 벌일 때, 그대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푸거는 행복했다. 그가 줄을 댄 오스트리아의 지배자 합스부르크가 승승장구하고 있어서였다. 칼로써가 아닌 결혼으로써 합스부르크의 영지는 크게 늘었다. 아들이 없는 귀족 자제와의 결혼으로 합스부르크는 금싸라기 땅을 손에 넣었다. 프랑스의 와인잔으로 불리는 부르고뉴도 합스부르크의 이름이 새겨졌다. 혼인으로 인한 영토확장의 절정은 미남왕 필리프 때였다. 스페인 왕국의 장녀 후아나와 필리프가 혼인했다. 스페인 왕가에는 아들이 없었다. 필리프와 후아나의 아들, 카를이 스페인 왕위계승자 1위가 된다는 의미였다.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스페인까지 이어지는 ‘제국’의 건설. 고대 로마 멸망 이후 최대 규모였다. “자기야, 일어나...스페인을 당신에게 줬잖아....” 스페인 공주 후아나는 합스부르크 ‘미남왕’ 필리프를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죽은 이후에도 그의 관을 끌고 전국을 유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합스부르크 스페인 제국을 만든 푸거 합스부르크의 카를은 스페인 왕 카를 5세로 즉위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탄생. 푸거는 카를 5세와의 연을 단단히 묶었다. 카를 5세의 다음 목표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 당시 황제는 제후들의 투표로 결정됐는데, 천문학적인 돈과 정치력이 요구됐다. 선거권이 있는 일곱 제후(선제후)를 찾아가 입이 벌어지는 금화를 먹인 것은 야코프였다. 카를 5세가 황제로 즉위한다는 건, 푸거가 ‘돈의 황제’로 즉위한다는 걸 의미해서였다. 1519년 6월 카를 5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에 올랐다. 돈의 힘이 만든 만장일치. 날고 긴다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도 꺾었다. 황제 즉위식에서 야코프는 카를 5세에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제 도움 없이 로마 왕관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 얼마 주고 삼?”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스페인의 카를 5세. 카를 5세는 너른 영지에서 알짜배기 광산을 푸거에게 줬다. 푸거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은과 구리가 없을 정도였다. 푸거의 배에 실린 광석은 로마, 리스본, 베네치아, 아우크스부르크 등 푸거 컴퍼니의 지점을 거쳐 인도와 러시아까지 나아갔다.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은 다섯자리 숫자의 재산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야코프 푸거의 숫자는 메디치 것에서 ‘0’이 두 개나 더 붙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의미였다. 교황청의 예산을 주무르다 돈이 필요한 곳에, 언제나 야코프가 있었다. 당시 교황청은 돈에 목말랐다. 교황이었던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 시스티나 성당의 재건축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메디치 가문 출신인 레오 10세는 건축과 예술에 엄청난 돈을 퍼부었다). 교황청이 ‘면죄부’를 판매한 배경이었다. 유럽 시민들에게 면죄부는 구원에 가까웠다. 이미 지은 죄를 청산하고, 천국으로 들어갈 열쇠를 다시 얻을 수 있었으니까. 얼마나 황홀한가. 불륜하고도, 사람을 죽이고도 예수님 품에서 잠들 수 있다니. “재건축은 언제나 남의 돈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 재건축 등을 이끈 교황 레오 10세. 그는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예술과 건축에 많은 돈을 썼다. 면죄부 판매 업자 중 하나가 푸거였다. 그는 판매 자금의 일부 수익을 받는 방식으로 면죄부 스캔들에 엮였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를 판매하는 교황청을 비판하면서 야코프 푸거의 이름을 함께 올렸을 정도. “푸거와 그의 추종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 세계를 뒤흔든 종교개혁의 배경에 ‘푸거’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였다. 교황청이 안보와 권위를 이유로 스위스 용병을 고용했을 때 돈을 대준 이도 푸거였다. 각색의 옷으로 눈길을 잡는 스위스 근위대는 현재까지도 교황청을 지키고 있다. 17세기 면죄부 증명서인 스트라다누스 조각품. 금융의 황제 야코프 푸거 정치의 황제가 카를 5세였다면, 금융과 경제의 황제는 야코프 푸거였다. 그만큼 많은 비난과 공격에 직면했다. 얼음만큼 차가운 피를 가진 사업가였지만, 죄책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고리대금은 신이 금지한 것이었고, 부자는 천국으로의 입장권을 쥘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그 역시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는 가난한 빈민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 푸거는 구빈원(가난한 이를 위한 시설)에 거액을 기부했다. 나중에는 직접 어려운 이들을 위한 공공 주택 단지를 짓기도 했다. ‘푸거라이’였다. 주택에는 정원과 아늑한 침실, 응접실이 딸려 있었다. 임대료는 거의 받지 않았다. 입주 조건은 단 하나. 가톨릭 신앙으로 신께 경건히 기도드리는 것. 독일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최초의 공공 주택 단지로 여긴다. “자 가난한 이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오늘날까지도 이용되는 푸거라이. [사진출처=context median und verlag Augsburg] 푸거의 죄책감은 아름다운 성당의 주춧돌이 됐다. 아우크스부르크 성 안나교회의 ‘푸거 예배당’이다. 독일 최초의 르네상스식 건물로 알려져 있다(그가 베네치아에서 배워온 것이다). 이곳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인 알브레히트 뒤러, 한스 부르크마이어, 요르그 브로이, 한스 다우허의 손때가 묻어있다. 신께 용서받기 위해 푸거가 얼마나 큰마음을 썼는지. 거인의 죽음 그리고 푸거의 몰락 1525년 12월 30일. 새해를 얼마 앞둔 추운 겨울날. 푸거가 몸져누웠다. 신의 부름을 받은 것이었다.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내는 푸거의 동료와 재혼을 준비중이었고, 조카들은 유산에만 머리를 굴렸다. 오늘날 가치로 4000억 달러에 달하는 유산도 소용없었다. 노잣돈은 물질이 아닌 영혼의 무게로 결정됐기 때문이었다. “전하, 어찌 제 돈을 안갚으십니까.” 카를 5세의 사채를 태우는 안톤 푸거. 1535년 그림. 야코프의 뒤를 이은 건 조카 안톤이었다. 푸거는 안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주는 건, 부담과 불편, 그리고 고역이다.” 유언은 사실이었다. 푸거가 줄을 댄 합스부르크 카를 5세의 아들 펠리페 2세가 국정 운영 과정에서 국가 파산을 세 번이나 선언해서였다. 푸거 가문에 진 빚을 갚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번영은 짧고, 몰락은 깊었다. 독일을 조각조각 내어버린 ‘30년 전쟁’ 은 ‘푸거’를 완전히 해체했다. 정치로 융성한 자, 정치로 파멸하리. 푸거 가문에 음각된 명문. 부자의 사서에 흐르는 문장이었다. 푸거라이에 세워진 야코프 푸거 기념비. [사진출처=Wolfgang B. Kleiner] <네줄요약> ㅇ16세기 독일 사업가 야코프 푸거는 전 세계에서 역사상 가장 돈이 많았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ㅇ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인 뒤 합스부르크 왕가에 줄을 대어 광산 사업 독점권을 얻어서였다. ㅇ교황청과도 연을 맺고 면죄부 사업에 참여하면서 개신교 탄생으로 이어지는 종교개혁에 불씨가 되기도 했다. ㅇ야코프 푸거의 사망 이후 합스부르크 펠리페 2세가 파산을 선언하면서 푸거 가문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경제’는 맛보기에 어려운 식재료입니다. 채권, 이자, 화폐라는 단어만 들어도 쓴맛이 올라옵니다. 맛있게 즐기려면 ‘역사’라는 양념이 필요합니다. 역사(히스토리)와 경제(이코노미)를 결합한 연재물 ‘히코노미’는 먹음직한 요리를 내는 걸 목표로 합니다. 기자 구독을 눌러주세요. 격주로 여러분의 경제 근육을 키워드리겠습니다. |
